오늘 유퀴즈!
역시 재밌더라구요 ㅋㅋ
마지막 경주 최부자 최준 선생님의 손자분이
나오셨고! 400년 12대 만석꾼 집안인 최부잣집이죠
만석꾼이라는건 곡식 만 섬가량응ㄹ 거두어들일
만한 논밭을 가진 큰 부자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이라고 합니다.. 우와 어마어마하네요
최부잣집 추산은
가마니 수로 거의 2만 가마니 였다고 하네요
토지는 약 100만평 이상 소유,
여의도면적 만한 정도가 되었다고 해요 후덜덜..
400년 12대 만석꾼 경주 최부자의 역사가 나옵니다
신라의 수도였던 경주(금성)
시조님이 최치원 선생님이신데
마지막 최부자인 최준 28대손 까지 이어졌다고 해요
유대인 금융 재벌 가문이고
유럽 철도와 석유 산업의 발달을 주도한
로스차일드 각문도 19세기부터 현재까지
엄청난 재벌 가문으로 알려지고있죠
모를 키우는 동안 다른 작물을
키울 수 있는 이모작으로 수익을 증대시키게 됩니다
그리고 그시절에는 소작인들에게
30프로를 주고, 지주가 70프로를 가지게 되는데
최부잣집은 소작인에게 반을 줬다고해요
그래서 소작인들이 농사를 더 열심히하고
생산량의 증대로 최부잣집의 수익이 증가했다고 해요
대체로 검소하고 절제의 내용이 담긴
최부잣집의 육훈들!
그중에서도 과객을 후하게 대접하라 라는
교훈들이 있었다고 해요
1970년 작고하신 최준선생이
마지막 최부자라고 하고,
조선의 3대 부자 중
유일하게 독립운동 가문인 최부자댁이라고 합니다
막대한 재산을 백산무역 통해서
내놓게 되었다고 해요
400년 만석꾼의 재산을
독립운동을 하는데 바치신거죠..
대단합니다
나라를 빼앗기자
최준선생은 독립단체에 가입을 하고
독립자금을 지원해서 옥살이를 하기도 하셨다고 해요
그 후 안희제 선생님과 함께
백산무역을 설립을 하셨다고 해요
백산 안희제 선생님은 백산무역의 전신이고
독립운동의 연락망을 만들고 군자금을 지원하신 분이죠
상하이 임시정부 등 독립자금이 필요한 곳으로
자신의 재산을 전달했다고 해요
백범김구선생님도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임시정부의 6할은 최준의 주머니에서 나왔다..“
현재 가치 약 1000억이상의 자금을
독립운동에 후원을 했다고 해요
정말 대단하신 분입니다
그리고 사형제 중 셋째인 최완선생
독립운동중에 별세를 하셨다고 해요 ㅠㅠ
일본 나쁜놈들 ㅠㅠ
그리고 최창호 후손께서
독립운동 관련 사료를 최부자댁에서
발견하셨다고 합니다
50년전에 사랑채에 불이나게되는데
그때 모든 문서나 서류들을 나무궤짝에 다 넣어놓으셨던 것 같다면서 그안에서 문서들을 발견하시게 됩니다
모두가 잊고 있었던
고문서들을 직접 발견을 하십니다..
그리고 당시에 받았던 경고문이나 명함, 엽서들을
유퀴즈 촬영장에 가지고 오셨더라구요
경고문에는
국제회의에 대표를 보내서
너희가 독립을 할 줄 아는데 이건 허망한 얘기다.
라는 문구도 있더라구요
이때가 파리 강화 회의 때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수습을 의논한 회의이고,
미국 윌슨 대통령의 민족자결주의는 3.1 운동의 주요한 계기가 되었다고 해요
조선을 도망한 범죄자들이 상해와 만주 지역에
임시정부라는 과격단체를 만들어 허세를 부리고 있다며,
자금을 조달하는 자는 엄중히 처벌한다고도
나와있더라구요
그때가 1919년이라고 써져있는거보면 알수 있다면서
대정 8년 이라고 표시가 되어있었다고 해요
나라를 빼앗긴 뒤, 우리나라는
일본 연호인 ”대정“으로 연도를 그당시에는
표기를 햇었다고 해요
그리고 독립운동가들이
최준선생에게 보낸 엽서들도 다 보관중이시더라구요
권동진 (3.1 운동 민족 대표 33인)
김정묵 (임시정부 임시의정원 대의원,
윤봉길 의거 당일 오전에 함께한 분이라고해요)
최동희 (3.1운동에 참가를 하고 연해주에서 활동하신분)
장두환 ( 대한 광복회 소속, 친일 부호 처단 및 군자금 모집)
이상정 ( 임시정부소속, 빼앗긴 들에도 봄이 오는가 이상화 시인의 형)
김응섭 ( 임시정부 법무장관, 파리강화회의 독립청원서를 영어로 번역)
권오설 (3.1운동 참가, 1926년 6.10 만세운동의 주역)
윤현진 (임시정부 초대 재무차장, 안희제 선생과 함께 백산무역 경영)
잊지말아야 할 분들입니다..
우리나라가 이토록 잘 살 고 있는 이유 중 하나이죠
약 100년전의 명함도 가지고 오셨더라구요
인쇄본 뿐만 아니라
글씨가 쓰여져 있는 독립운동가들의 명함이
있다고 해요
허규 ( 의병장이자 저항 시인 이육사의 외삼촌)
한흥교 (상하이의 최초 독립운동 단체 “동제사”소속
독립운동가들의 의료를 전담)
허철 (허승완)
조선의용군 소속, 봉오동과 청산리 전투에 참가했다고 해요
많은 사람이 공유하여 연구가 될 수 있는
역사자료가 되기를 바란다는 마음..
이렇게 보면 볼 수록 최준 선생님
정말 대단하시더라구요
이렇게 자금조달이 없었으면 우리나라 독립운동이 잘 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나라를 위해 정말 큰일을 하신 분 같아요
그리고 해방 후
남은 재산을 교육사업에 투자를 하셨다고 해요
해방 후 소유했던 부동산들을 담보로 대출을 받았던 최준은 파산을 하게되는데, 해방이되면서 무효과 된 일부의 담보계약 덕분에 돈이 생기게됩니다
그 후 최준선생은 교육 사업에
또 다시 전재산을 투자했다고 해요
후손들에게 단 1원도 남기지않았다는데..
살고있던 집, 선산, 농터 다
학교 재산에 들어갔다고 해요
즐거운 마음으로 재산을 환원 하셨으니
그것을 명예롭게 생각해야 된다고 합니다 후손들은..!!
그리고 국채보상운동 자료도 있었다고 해요
1907년에 일어난 운동이고
일제에 의해서 반강제적으로 진 빚을
갚기 위해서 온 국민이 전개한 국권회복운동이라고 해요
시작부터 끝까지 일목요연하게 정리가 되어있고,
경주지역의 5000명의 성금 목록이
담긴 문서가 발견되었다고 해요
어떤분을 집을 팔아서 50냥, 소팔아서 100냥
노동을 한 노동 품으로 30냥..
나라의 빚을 갚기 위해서
이 많은 사람들이 참여를 했구나 싶던 순간이였다고 하십니다.
나라를 지키려던 선조들을 잊지말고
그정신을 이어나가면 어떨까 하는 말들은 정말
맞는말이고 동감합니다!
유퀴즈타임!!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경주 최부자댁의 대표적인 가훈인 “사방 100리 안에 굶는 이가 없게 하라”
100리의 “리”는 우리 고유의 거리 단위로
약 0.4km를 가리킨다고 해요
다음 중 거리또는 길이의 단위가 아닌 것은?
정답은 석! 입니다
보: 1보는 한 걸음 정도의 거리
길: 한 길은 약 2.4미터 또는 3미터에 해당
석 : 곡식, 가루, 액체를 재는 부피 단위
발 : 한 발은 두 팔을 양옆으로 펴서 벌렸을 때
한쪽 손끝에서 다른 쪽 손끝까지의 길이
라고 하네요, 상금은 기부하셨다고하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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